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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충북갤러리 하반기 기획자 공모 전시] 《장소상실》 포스터 배경](/DATA/exbi/20241004031714469_WZXx.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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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충북갤러리[2024 충북갤러리 하반기 기획자 공모 전시] 《장소상실》Exhibition Details
- 전시일정 Oct 17 - Nov 4, 2024
- 참여작가
고정원 외 10명
- 고정원
- 김기성
- 이재복
- 윤다혜
- 금벌레(이지영)
- 이선구
- 문창환
- 김라연
- 홍덕은
- 차성욱
- 이선희(기획자)
Artist' note
이선희(장소상실 기획)
도시의 성장, 부흥, 쇠퇴 과정은 흡사 사람이 태어나 자라고, 전성기를 누리다 나이 듦을 경험하는 것처럼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도시는 그곳에서 거주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치열한 삶과 문화가 축적된 초상의 단면이며, 더 나은 공간이 되기 위한 성장의 시간을 품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화가 거듭될수록 도시는 삶의 다양성을 잃고, 추상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어떠한 장소가 기억에서만 존재하게 될 때, 우리는 끊임없는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동질화 된 공간을 반복적으로 주조해내는 도시는 장소가 가진 차이를 빠르게 말살시키며, 공간이 우리의 살과 얽히며 친밀한 장소로 변화되는 경험을 단절시킨다. 또한 자본의 회로로 기능하는 도시는 거주에 대한 우리의 인식 역시 지대(地代)의 상승과 맞물리도록 변모시켰다. 이제 집은 더이상 우리가 실존적으로 뿌리내리는 장소가 아니라 투자를 위한 대상으로 바뀌었다. 이는 우리에게 지속적인 뿌리뽑힘(uprooted)의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일상 속 뿌리뽑힘 상태가 주는 상실감과 애도의 감정을 예술가들의 다양한 태도와 실천을 통해 선보인다. 1. 재개발과 도시재생 등의 이유로 사라진-질 공간을 다큐멘터리적 시선으로 기록(이재복, 김기성)하고, 2. 개인적 장소경험을 박제, 기억하기 위해 재현(김라연, 윤다혜)하며, 3. 발화를 통해 심상의 지도를 이미지화(금벌레)하는 과정으로 연결된다. 또한 4. 추상공간 속에서 주체성 회복을 위한 재현적 실천(고정원, 이선구)과 5. 더 나아가 짓고, 거주하며 주변환경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위한 과제(문창환, 홍덕은)로 구성된다.
본 전시를 통해 관람자 개인의 심상 속에 머무르던 장소에 관한 기억을 끄집어내고, 도시와 함께 호흡하며 끊임없이 현재화되는 장소 실천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는 우리가 지금 어디에 발을 디디며 살고, 무엇을 항해 걸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뿌리내림 할 것인지 다가올 도시를 위한 안내자가 될 것이다.
About
이선희(장소상실 기획)
도시의 성장, 부흥, 쇠퇴 과정은 흡사 사람이 태어나 자라고, 전성기를 누리다 나이 듦을 경험하는 것처럼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도시는 그곳에서 거주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치열한 삶과 문화가 축적된 초상의 단면이며, 더 나은 공간이 되기 위한 성장의 시간을 품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화가 거듭될수록 도시는 삶의 다양성을 잃고, 추상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어떠한 장소가 기억에서만 존재하게 될 때, 우리는 끊임없는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동질화 된 공간을 반복적으로 주조해내는 도시는 장소가 가진 차이를 빠르게 말살시키며, 공간이 우리의 살과 얽히며 친밀한 장소로 변화되는 경험을 단절시킨다. 또한 자본의 회로로 기능하는 도시는 거주에 대한 우리의 인식 역시 지대(地代)의 상승과 맞물리도록 변모시켰다. 이제 집은 더이상 우리가 실존적으로 뿌리내리는 장소가 아니라 투자를 위한 대상으로 바뀌었다. 이는 우리에게 지속적인 뿌리뽑힘(uprooted)의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일상 속 뿌리뽑힘 상태가 주는 상실감과 애도의 감정을 예술가들의 다양한 태도와 실천을 통해 선보인다. 1. 재개발과 도시재생 등의 이유로 사라진-질 공간을 다큐멘터리적 시선으로 기록(이재복, 김기성)하고, 2. 개인적 장소경험을 박제, 기억하기 위해 재현(김라연, 윤다혜)하며, 3. 발화를 통해 심상의 지도를 이미지화(금벌레)하는 과정으로 연결된다. 또한 4. 추상공간 속에서 주체성 회복을 위한 재현적 실천(고정원, 이선구)과 5. 더 나아가 짓고, 거주하며 주변환경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위한 과제(문창환, 홍덕은)로 구성된다.
본 전시를 통해 관람자 개인의 심상 속에 머무르던 장소에 관한 기억을 끄집어내고, 도시와 함께 호흡하며 끊임없이 현재화되는 장소 실천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는 우리가 지금 어디에 발을 디디며 살고, 무엇을 항해 걸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뿌리내림 할 것인지 다가올 도시를 위한 안내자가 될 것이다.
돗자리 펼치기
이 작품은 전시 기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워크숍 '돗자리 펼치기’를 통해 구성됩니다. 돗자리 펼치기는 우리가 돗자리를 펼치는 순간, 그 공간이 잠시 동안 우리의 것으로 변화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했습니다. 워크숍을 통해 이 낯선 전시장을 친근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장소 상실의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의 기억을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이 워크숍은 시각예술가 금벌레와 낭독극을 통해 아이들을 교육하는 교사이자 아마추어 연극 활동가 차성욱의 협업으로 진행됩니다. 워크숍에 참여하신 분들이 제작한 돗자리는 전시 종료 이후 각자의 장소에 포개어질 수 있도록 우편으로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워크숍 1> 나의 존재 장소 찾기
1. 일시 : 2024.10.17.(목) 16:30~18:00 / 충북갤러리(인사동길 41-1, 인사아트센터 2층)
2. 대상 : 성인
3. 개요 : 장소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낭독하고 자신의 돗자리 만들기
4. 내용 :
장소 상실과 관련된 사건들을 읽고 재해석하여 자신의 기억을 발굴하는 글쓰기. 그 내용을 토대로 도출된 장소를 이미지화하기
<워크숍 2> 나의 두 가지 장소들
1. 일시 : 2024.10.22.(화) 10:30~12:30
2. 대상 : 학생 22명
3. 개요 : 자신이 버리고 싶은 장소와 애착하는 장소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4. 내용 : 자신의 돗자리에 앉아 두 가지 글 낭독하기
* 워크숍 신청 링크: https://forms.gle/s55qvGMJBCceGvKQA
* 워크숍 신청 문의: dutumdutum@gmail.com
금벌레는 집과 몸의 관계에 주목하여 거주의 현상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작업을 해왔다. 그 연장선에서 기억과 기념의 물질문화(material culture)가 갖는 의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의 초기 작업은 조부의 전거와 새로운 거주지에의 적응, 별세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우리가 이 세계에서 거주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물질성과 실존의 얽힘에 대해 다루고 있다. 2020년 리스본 시립미술관과 2021년 갤러리 B77에서의 전시 이후로 민속신앙인 가신신앙에 주목하여 집지킴이의 신체를 구성하는 것을 탐구하고 있으며 인간, 비인간 존재의 개입을 통한 작품제작을 시도하고 있다.
차성욱은 초등학교에서 17년째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대학 시절에 만난 연극과 산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만든 낭독극을 바탕으로 『온작품을 만났다, 낭독극이 피었다』라는 책을 공동 집필했으며, 현재 교사 극단 빈도에서 활동 중이다. 또한 주목받지 못하는 백두대간 이야기를 알리고자 『우리가 몰랐던 백두대간』을 발간하는데 참여했다. 이 워크숍을 통해 연극이라는 활동무대가 갖는 일시성과 지속성, 백두대간처럼 굳건히 서 있어도 장소성이 발현되지 않는 장소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Exhibitions
Review
충북문화재단 충북갤러리 ‘장소상실(Loss of Locus)’ 전 비평
장소상실(Loss of Locus),
문화·사회적 연속성의 붕괴 그리고
‘뿌리 뽑힘(uprooted)’에 관한 아홉 개의 서사
홍경한(미술평론가)
1.
장소는 개인의 경험에 따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예를 들어 여행지에서 느낀 감동이나 그 장소에서만 겪을 수 있었던 경험은 그곳을 단순한 위치 이상의 곳으로 만들게 한다. 이는 장소가 개인의 경험(상황을 직접 겪거나 참여함으로써 얻게 되는 개인적, 감각적, 혹은 인지적 학습과 이해의 총체)이 다채롭게 기록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장소는 특정 사건이나 기억이 저장된 공간이기도 하다. 과거의 어떤 곳에 대한 향수 및 특별한 장소에서 느끼는 안정감 또는 불안은, 장소가 물리적인 것 이상으로 감정적, 심리적 요소를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한다.
이 밖에도 장소는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장이자, 인간관계와 교류를 위한 무대가 되며, 때론 유무형의 사회적 무게를 갖기도 한다. 더불어 장소는 정체성을 부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뿐더러, 존재가 드러나는 공간으로도 설정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분석을 옹호하는 철학적 관점과 예술적 해석은 드물지 않다.
일례로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에게 장소는 인간의 내면과 상상의 세계이다. 그는 장소야말로 인간의 감정과 사물, 상황, 개념 등을 머릿속에서 그려내는 정신적 활동에 있어 매우 중요하게 역할 한다고 믿었다. 사람들에게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공간과 결합된 기억과 감정의 층을 형성하는 공간 이상의 가치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 장소를 ‘존재의 드러남’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독일의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거주(居住)’ 개념을 통해 인간과 장소의 상관성을 설명했다. 장소가 사람들에게 함의를 부여하고, 인간이 장소와 함께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의 강연 정리집 《건축함, 거주함, 사유함(Bauen, Wohnen, Denken)》(1951)을 보면 장소란 인간의 삶의 중심이 되는 근원적인 자리임을 알 수 있다.
캐나다의 지리학자인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는 장소를 정서적 연결로 본다. 그는 ‘장소감(Sense of Place)’이라는 개념 아래 인간이 특정 장소에 대해 가지는 감정(자극이나 상황에 대한 개인의 내적 반응)을 강조했는데, 저서 《장소와 장소 상실(Place and Placelessness)》(1984)에는 현대 사회가 표준화되고 획일화되면서 장소의 고유성이 상실되는 문제가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과 장소 사이에 깊은 교감이 형성될 때 비로소 그 장소는 특별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장소는 물리적 공간 이상의 인간 정체성과 기억, 감정, 역사, 그리고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가치를 부여받거나, 개인적 경험과 감각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기능한다. 문화적 맥락을 포함해 매우 복합한 개념을 포박하듯, 사람마다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풀이한다. 물론 여기엔 특정 장소를 바라보는 예술가 저마다의 주관까지 투영되어 있다.
2.
예술가들은 곧잘 장소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상황, 사건, 언어 또는 개념이 놓인 환경이나 배경)을 반영한 작품을 통해 장소(공간) 참고로 장소는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인식되는 지점이라면, 공간은 그 의미 이전의 영역을 말하지만 때론 이 둘 사이의 개념은 혼재된다.
을 설명하고, 경험으로서의 장소에 대한 감각을 직·간접적으로 펼쳐낸다. 어떤 미술가들은 개인적 또는 집단적 기억을 표현하기 위해 특정 장소를 소환하기도 하며, 사진작가 마이클 웨슬리(Michael Wesely)는 시간을 추적하는 긴 노출 사진을 통해 장소의 변화를 기록하고, 그 속에서 시간의 흐름과 기억을 담아내는 작업을 선보인다.
개중에는 장소(공간)와 작품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Site-Specific Art)를 중시하는 작업들도 선보인다. 미국의 예술가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의 대지미술 작품 <스파이럴 제티(Spiral Jetty)>는 미국 유타주에 설치된 대규모 나선형 조형물로, 작품 자체가 그 장소의 지형적, 환경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스미스슨은 장소를 단순한 배경으로 보지 않고, 장소와 작품이 밀접하게 결합된 미학으로 해석한다.
충북문화재단 충북갤러리(인사아트센터 2층)에서 진행되는 ‘장소상실(Loss of Locus)’ 전(展)(2024.10.17.~11.4.)도 그 중 하나다. 이선희가 기획한 이 전시는 장소에 대한 여러 레이어(layer)를 보여주며, ‘장소’와 ‘상실’을 축으로 그것이 어떻게 시각화 될 수 있는지를 다양한 조형으로 직조한다.(기획자의 말에 의하면 “위계적으로 분류되지 않은 채 위치와 환경, 시간, 개인적 경험, 가정(가족), 공동체 와 같은 것들이 겹치고, 뒤섞여서 다양하게 해석된다.”) 기획자 이선희.
장소를 주관적인 경험(사람이 살아가며 직접 겪고 느끼며 얻게 되는 지식, 감정, 통찰의 축적)을 담고 있는 곳이라 정의한 기획자는 일상생활 속 발생하는 현상들을 경험하고, 분석하며, 의미를 부여한 공간으로 일컬으며 장소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밝힌다.
“어떠한 장소가 기억에서만 존재하는 곳이 되었을 때 우리는 끊임없는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동질화 된 공간을 반복적으로 주조해내는 도시는 장소가 가진 차이를 빠르게 말살시키며 공간이 우리의 살과 얽히며 친밀한 장소로 변화되는 경험을 단절시킨다. 또한 자본의 회로로 기능하는 도시는 거주에 대한 우리의 인식 역시 지대(地代)의 상승과 맞물리도록 변모시켰다. 이제 집은 더 이상 우리가 실존적으로 뿌리내리는 장소가 아니라 투자를 위한 대상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지속적인 ‘뿌리 뽑힘(uprooted)’의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뿌리 뽑힘’이라는 표현이다. 뿌리가 뽑힌다는 것은 원래 속한 장소에서 분리됨을 의미하며, 비유적으로는 익숙하고 안전했던 환경에서 벗어나거나, 떠나야만 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이를 달리 보면 정체성 일부가 손상되는 것, 혼란을 초래하는 경험과 밀접하다. 공동체 내에서의 소속감의 박탈도 그 일부다. 또한 ‘뿌리 뽑힘’이란 장소와 얽힌 기존의 기억이 흐릿해지거나 소멸됨, 시멸(澌滅)과도 무관하지 않다.
물론 ‘뿌리 뽑힘’은 기억의 재구성과 연관이 있다. 새로운 장소로의 이동, 그에 따른 낯선 환경에서의 이방성까지 수반한다. 무채색의 도시, 이민, 전쟁, 재해 등의 이유로 집과 장소를 잃는, 거대한 구조물이 주변 환경과 융합되지 못하고 부조화 속에 서 있는 모든 현상이 ‘뿌리 뽑힘’에 관한 반응의 연장이다. 이 외에도 ‘뿌리 뽑힘’은 정주성이 아닌, 끊임없이 이동하는 ‘부유하는 장소성’을 말하며, 이는 유동적인 동시대인들의 삶과도 관계된다.
이처럼 여러 결을 지닌 ‘뿌리 뽑힘’을 키워드로 한 이번 전시는 이선희의 기획으로 모두 9명의 작가 고정원, 김기성, 이재복, 금벌레, 윤다혜, 금벌레, 이선구, 김라연, 홍덕은.
가 참여한다. 기획 의도는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시각을 통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뿌리 뽑힘’의 상태가 주는 상실감.” 이선희.
을 적시하고, 장소에 얽힌 역사와 문화적 서사를 탐구하기 위해서다.
3.
기획의도에 맞게 작가들은 각자의 시각언어로 장소를 재해석하고 그것의 의미를 심화한 작업들을 선보이며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감각적 층위를 선사한다. 나아가 작가들의 작업 역시 ‘뿌리 뽑힘’을 키워드로 관람객이 장소를 일차원적 공간이 아닌, 역사와 기억의 복합적 층위로 전개하며 관람자들에게 장소가 지리적, 문화·사회적, 역사적 상호작용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낸다.
전시의 기본구조는 ▶공공데이터와 사진, 영상 기록을 통해 잃어버린 공간을 박제하기 ▶심성의 지도를 그리며 시공간을 연결시키기 ▶대지의 순환과 물질적 생동성을 회복하기 ▶뿌리내림과 일어서기의 과정에 입각해있다. 역사와 기억이 얽힌 장소에 대한 작가들의 개인적 경험과 관심, 그리고 시간적, 문화적, 개인적 맥락이 교차하는 장면들을 각자의 조형방식으로 소개한다. 그리고 모든 소실점은 장소와 상실, ‘뿌리 뽑힘’으로 향한다.
일례로 작가 김기성과 이재복은 가족의 개인사를 바탕으로 한 과수원(30여 년간 부친이 운영했던 과수원이 다른 무엇으로 대체되는 현실)의 운명을 그리거나, 이방인의 시선에서 도시개발과 기후위기 앞에 놓인 채 변화하는 풍경들(도시의 재개발 과정이 도시 환경과 경관에 미치는 영향, 김기성), 경제논리에 의해 주변화 되는 동식물, 그리고 도시 환경 속 사라지는 공간(이재복) 등을 싱글채널 비디오와 사진으로 되짚는다. 매체는 다르지만 장소에 깃든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라는 점은 같다. 터전의 항구성을 거역한 이동, 동의 없는 이식이라는 측면에서만 놓고 보면 ‘뿌리 뽑힘’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작가 김라연과 윤다혜는 개인적 장소 경험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산책을 하며 만나는 길과 사물, 그리고 자신의 생각들을 파편화하고 모으며 화면을 구성하는 회화 작업”(길을 걸으며 발견하는 풍경, 사물을 통해 작가 개인의 내면세계와 외부 현실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김라연)으로 장소의 일상성을 담담히 다루고, 봄나물을 뜯으려 자주 방문했던 산, 그 산에 저장된 가족들과의 추억이 있는 장소를 기록함과 동시에 개발로 잃어버린 상실을 도예작품과 항공사진으로 보여준다.(윤다혜) 자료에 따르면 작가는 산이 개발되기 전 모습을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제공하는 수치 자료를 이용하여 3D로 재현한 후 폴리곤 메쉬로 전환하여 그릇 표면에 새겨 넣었다. 그에게 장소를 담는 그릇 작업은 지금은 사라진 장소를 재현한 기록물이다.
이들에게 장소상실은 감정적 공백을 만들어내는 자리다. 장소의 고유성과 유한성 및 그곳을 둘러싼 시간의 흐름이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어떻게 무화되는지에 대한 미적 숙고를 엿볼 수 있다.
작가 고정원과 이선구는 버려짐에 대해 질문한다. 고정원은 간판업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작품의 도구로서 수집된 간판들을 사용해 잊혀가는 것과 재현되는 것의 간극을 조명한다. 작가에게 간판은 한 자리에서 나름의 생명을 담고 있는 개체로 존재한다. 그는 이 간판으로 소명을 다한 오브제에 시간 연장을 부여하고 개입에 의한 새로운 관계성을 설정한다.
이선구는 실제 공간을 미니어처로 제작한 뒤 그것을 다시 촬영하는 방식으로 건축공간에 관한 시각체계의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그는 현대 사회에서 경험하는 공간의 변화에 주목하며, 장소의 성격과 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상실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업계획서에 적시된 “도시인들의 안식처인 집이 점차 몰개성의 공간으로, ‘뿌리내림’이 불가능한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아파트 공간의 구조 속에서 개인의 뿌리내림과 회복의 시간을 고민한다.”는 문장도 같은 선상에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두 작가의 작업에선 시간의 중첩과 흔적의 미학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물존재의 불완전성, 재현의 불가능성에서 오는 미적 감각, 결핍을 채우려는 잉여적 시도 등도 마찬가지다.
기후 변화로 위기에 처한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모색해온 작가 문창환은 이번 전시에 세대 간의 충돌과 그 속에서 조화와 이해가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지에 대해 자문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도시에서 나무로 살아남기’라는 인상적 구절(리서치 프로젝트 도시소록, 2021, 기획 이선희)이 떠오르는 홍덕은은 “반복적으로 붕괴되고 새로 건설되는 도시의 공간에서 자연을 훼손하고 파헤쳐지는 과정과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는 설정의 오류를 전하고, 인간과 자연이 서로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는 경지로써 도시 속, 함께 살아가는 생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은 도시에서 재배된 농작물들의 상징적 의미와 인식 및 삶의 관계망(문창환), 도시 속 발견된 이미지(화분, 가로수 등, 홍덕은)를 각자의 문법 아래 읽고 해석함으로서 함께 공존하며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한다. 이들은 공존공생을 위한 여러 갈등을 오히려 소통과 이해를 위한 기회로 바라보며 경험의 공유와 상호학습의 필요성, 공통 가치를 통한 연대감, 의사소통 방식의 개선, 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의 필요성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도자와 인류학을 전공한 작가 금벌레는 성인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두 번의 워크숍을 맡는다. 장소에 얽힌 개인적인 기억들에 관해 글을 적고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자체를 예술로 삼는다. 워크숍은 ‘장소 상실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와 ‘자신이 버리고 싶은 장소와 애착하는 장소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로 진행되며, 장소에 얽힌 개인적인 기억에 관해 글을 적고 함께 읽는 방식 외에도 낭독극이라는 연극적 매체를 활용한 프로그램도 마련한다. 교사이자 아마추어 연극 활동가인 차성욱과 협업한다. 시각 너머 공감 가능한 실천성에 방점을 둔 프로그램이다.
4.
참여 작가들의 작업은 대체로 충북(청주, 보은 등)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기획자의 말처럼 “장소상실과 ‘뿌리 뽑힘’은 우리 지역(특정지역)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도시 곳곳에서 비슷한 주기로 일어나고 있는 동시대 현상이다.” 지금도 도시를 포함해 인간이 살아가는 곳에선 장소상실이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누군가에게 또는 우리 모두에게 기억의 현재화는 탈각된 채 감각적, 정서적 기제로서의 장소만 남곤 한다.
이번 전시는 장소를 기억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화될 때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고 보고 있다. 이는 시간의 연속성 속에서 장소에 관해 환기하고 현재를 텃밭으로 장소성을 되물으며, 기억과 감정이 삶 안에서 어떻게 재해석되고 비상실적 조건을 위해선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며 동시대 무수한 변화 앞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올바른 연대란 과연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물론 이번 전시는 관람자들에게 시각만족에 머무는 수동적 과정이 아니라, 행동의 동기를 부여하는 적극적 과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모르긴 해도 관람자는 해당 전시를 통해 장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고 특정 장소와 얽힌 기억을 소환하며, 사회적 문제나 환경적 문제를 현재화하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일상적 관심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24.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