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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충북갤러리이난희 개인전
Artist' note

보통 정신적이거나 경제적이거나 방황과 갈등를 견디다가
인간의 삶은 원래 그런거야 라고 간주한다
한편으론 합리화 하면서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다
조금만 더 위로 받고싶다 에서 늘 작업에 임한다.
그림그리는행위는 일상이며 생활이다
춘하추동 계절이 바뀌면 감각도 변화하고 감정도 변한다

나이 듬은 또하나의 변수다 생활의 단순화가 이어지며 작품에도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내 스스로 기대하며.

- 작가노트 중

Exhibitions
Review

이난희 개인전 백화(百花)에 부쳐
- 그 많던 맨드라미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이난희 작가의 그림을 보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박완서 선생의 소설이 떠오른다. 자전적 이야기를 소설로 표현한 이 작품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자연 자체인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된 인물, 혹은 그 시대 사회상이 작가만의 문체로 다듬어진 날 것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선생이 왜 소설가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보인다. 하여 이 작품이야말로 박완서 소설의 뿌리이자 원형(原型)이다.
누구에게나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면 먼발치서 바라보는 듯 애잔하다. 유년 시절 자연을 묘사한 이 소설에서 어렴풋하게 이난희 작가의 유년이 아련하게 오버랩 된다. 청주시의 중심 북문로에서 태어난 작가에게 어린 시절 집 앞에 깔려있던 아스팔트 포장 길은 캔버스였다. 곱돌을 크레용 삼아 낙서하듯 포장길 바깥의 자연을 보이는 대로 막연하게 그리기 시작한 한 소녀가 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듯 그리는 일이 본능처럼, 오래된 습관처럼 온몸에 체득되어 갔다. 소녀가 했던 보고 느끼고 그려보는 행위는 훗날 자연스럽게 작가가 될 수밖에 없는 근본이 되었고 수많은 그림의 원형이 된 것이다.
유년 시절부터 쌓아 올린 관찰과 사색의 힘은 결혼과 육아라는 휴지기를 거쳐 한 사람은 소설가로, 한 사람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길로 이끌었다. 가슴 한쪽에 키워온 두 소녀의 애틋한 갈망이 다른 듯 닮았다.
이난희 작가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놀이이고 생각의 표현이고 남들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말과 같은 도구다. 유년에 보았던 자연과 현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꽃과 나무가 주된 작업의 소재라는 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시간을 더하면서 재료나 표현기법, 그림의 형식에 차별을 두고 있을 뿐이다.
나팔 모양으로 낮에는 활짝 피었다 저녁이면 오그라드는 메꽃. 빨강 꽃과 초록 잎사귀의 강렬한 색채 대비와 함께 진취적인 이미지의 맨드라미. 한 없이 고요하게 물 위에 떠 있는 연꽃과 난 잎.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모란과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작약까지.
길을 산책하다 이 꽃들이 시선을 사로잡으면 작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없이 들여다본다. 결국 사진을 찍어 오거나 이튿날 어김없이 스케치북을 들고 다시 나선다. 기어코 그 꽃을 그려내야 갈망이 해소된다. 그림을 그리며 꽃의 색감이나 주변 환경, 날씨와 빛, 그날의 기분 등을 고루 반영한다.
그림을 그리다 다시 그 대상의 실체가 궁금해지거나 화면을 완성하기 위해 뭔가 미진하다면 다시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가고 또 가기를 반복한다. 이난희 작가가 꽃을 캔버스에 옮기는 기나긴 여정이다.
이 여정 속에서 작가는 꽃과 나무로 이뤄진 자연의 생명력에 늘 무한한 경외감을 느낀다. 사람의 발길에 쉽게 차이지만 그래도 그 자태를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 쓰는 들꽃이나, 빛에 따라 달라지는 색감의 변화는 작가를 위해 존재하듯 매 순간 다르게 빠져든다.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의 과정은 자연과 일체가 되거나 공감하지 않으면 지난한 일이다. 온 힘과 온 정성을 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의 이번 개인전 주제는 ‘백화(百花)’이다. 수많은 꽃을 그려 선보인다는 의미이다. 작가가 즐겨 그리는 맨드라미 꽃에도 백 가지의 다른 표정이 보인다. 집 근처 중량천을 산책하다 만난 강렬한 맨드라미. 어느 한적한 시골 전원주택 마당에 핀 소박한 맨드라미. 교회 벽돌 벽에 바짝 붙어 핀 살가운 맨드라미. 사찰 마당 나른한 햇살 아래 핀 고요한 맨드라미. 일찍 서리를 맞아 축 늘어진 맨드라미. 형태가 독특해 괴기스러운 맨드라미. 홀로 가을에 자태를 뽐낸 노란 맨드라미. 이루 말할 수 없는 맨드라미 들이 각각 표정을 달리하며 작가와 조우한다.
한적한 길과 우중충한 지붕 아래, 혹은 회색 담벼락 곁에, 또는 두엄을 만드는 마당마다 붉은 기상으로 물들이던 꽃은 초겨울 서리에 초라하게 시들지만 이듬해 어김없이 화려하게 부활한다. 비록 그 많던 맨드라미가 한때 사라질지언정 다시 거친 땅을 비집고 나올 것을 알기에 작가는 침착하게 기다린다.
같은 맨드라미라도 작업의 연륜을 더하며 점점 표현이 단순해지고 있다. 열정으로 만난 청춘의 맨드라미가 닭벼슬 모양의 빨간 꽃을 섬세하게 한 올 한 올 곧추세웠다면, 이제 고희를 넘긴 작가의 맨드라미는 한지에 수채화로 많은 걸 생략한 단순한 붓질로 마무리된다.
작가는 꽃을 그리돼 보이는 사실에 충실하기보다는 그림을 바라볼 때 느낀 마음가짐에 주목한다. 다음에 관심을 갖는 것은 색채다. 보색의 느낌을 살리고 전체적인 조화를 위해 표현하고 싶은 의지에 따라 색채를 조절한다. 이 작업 과정을 통해 작가는 한없이 고요해지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꽃을 관조하고 음미하며 사색하는 과정이 작가가 만들어 낸 ‘그 어떤 맨드라미’로 태어나는 것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캔버스에 유화로 그림을 그려왔다. 언젠가부터 맑고 투명한 수채화에 매력을 느낀다. 유화와 다르게 수채화는 감각적이고 경쾌한 느낌을 주어 그린 이의 감정이 잘 드러나는 재료라고 생각한다. 한동안은 이 수채화에 몰두할 것 같다.
작업 환경공간과 때에 따라 그림의 크기도 달라진다. 청주시 문의면 남계리 작업실에서는 큰 작품을 할 수 있지만 서울의 좁은 공간에서는 그에 걸맞는 작업을 한다. 이번 전시 ‘백화’에서 작가가 선택한 것은 22cm짜리 정사각형의 한지 프레임이다. 한쪽 벽면 전체를 22cm짜리 그림들을 연결해 설치한다. 이 외에도 작가는 그동안 수많은 꽃을 각기 다른 얼굴로 그려낸 작품을 건다.
작가는 끊임없이 새로운 표현형식을 고민하고 시도한다. 수채화와 한지의 만남은 작가에게 또 다른 경이이다. 물을 머금은 수채화가 한지에 다가가 스며드는 번짐의 아름다움에 빠져들듯이 작가는 앞으로 또 어떤 미학에 빠져들지 알 수 없다. 백 가지로 표정을 달리한 꽃이 화답할 차례다.

김정애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