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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충북갤러리재경충북작가회 제 29회 현대미술초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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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와 그때 거기를 잇다



이선영(미술평론가)





1976년에 창립되어 꾸준히 그룹전을 해온 ‘재경 충북작가회’는 충청북도와 수도권이라는 두 지역에서의 활동에 중점을 둔 미술 단체다. 올해 전시도 인사아트센터 충북갤러리(4.16-4.29)에서 1차, 충주시청 관아갤러리(5.9-5.15일)에서 2차 전시가 열린다. 양 지역의 활동과 관련된 협회는 청주와 서울 양쪽에 간사를 두고 있다. 현재 이 단체의 회장인 신범승은 재경 충북작가회에 대해, ‘내륙도인 충청북도 출신의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원로, 중진, 중견, 신인 미술 작가들의 친목 친화 모임’이라고 소개한다. 현재 회원은 63명이고, 이번 전시에서는 50여 명이 참여했다. 그들은 대개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에서도 이미 자리를 잡았지만, 지역과의 연결을 강조했다. 각 도마다 저마다의 특색이 있었던 나라에서 지역의 위상이 낮아진 것은 급격한 근대화의 결과이다. 근대화는 무엇보다도 도시로의 집중을 통해서 발전의 동력을 얻기 때문이다.

있던 차이는 크게, 차이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벌려 나가며, 대개 차이가 차별로 변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평균 연령이 58세가 되는 충북의 한 지역에 대한 통계(한국일보, 3월 24일)는 지방소멸이 큰 걱정거리인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한 단체가 반 세기 가량 쌓아온 문화 예술 활동은 특별하다. 학생들이 가득했던 학교는 폐교가 되어 간혹 레지던시 같은 문화시설로 탈바꿈하여 청년 미술가들의 산파 역할도 한다. 한 사회와 문화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 생물 유전자가 문화 유전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지방자치제가 활성화되어 각지에 문화재단이 생겨난 시점도 2000년대 이후여서, 그동안 별다른 공공적 지원 없이 동료의식을 통해 역사를 이어왔던 풀뿌리 문화단체의 활동은 더욱 귀하다. 협회가 출발한 1970년대는 고속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만큼 중심과 주변의 격차가 벌어지던 시대였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몰렸다. 미술 또한 많은 관객을 필요로 하는 문화다. 19세기와 20세기에 순차적으로 세계의 수도를 자처했던 파리와 뉴욕에 집중된 현대미술이 그 예다. 한 국가에서는 수도가 될 것이다. 미술대학 또한 수도권에 많아 청년기를 수도권에서 보내면서 고향으로부터의 이탈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전위적인’ 현대미술은 앞을 향해 전진해 왔지만, 이제 길은 직선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직선 고속도로나 속도 대신에 미로나 유목이 21세기의 키워드로 등극했다. 일방적 근대화를 넘어서고자 하는 탈근대란 탈중심화를 말하기에 그 국면에서 지역의 비중은 높아진다. 협회 회원들은 주로 수도권에서 활동해 왔으나 자신들의 근본을 잊지는 않았다. 유년 시절 누구나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희망을 가졌을 테지만,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작업의 뿌리인 보다 근원적인 시공간에 대한 그리움은 짙어진다.

고향은 자기 발전을 위해 떠나야 하면서도, 더 진정한 변화를 위해 회귀해야 하는 역설적인 곳이 된다. 그곳은 알라이다 아스만이 [기억의 공간]에서 말한 전형적인 기억의 장소이다. 기억의 장소는 신화화된다. 종교학적 관점에서 신화적 시공간은 그곳에로의 회귀를 통해서 심신이 갱신될 수 있는 상징적 우주의 중심이다. 일상에서는 제의나 축제를 통해서 가능하다. 예술은 신화와 종교, 제의나 축제를 계승함으로서 그 역할인 갱신을 시도한다. 손끝의 재주를 넘어 자신의 전역량을 쏟아붓는 작가는 작업을 통해 거듭난다. 단편적 추억의 재현이 아닌 다시 태어나기, 되기이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신선했던 시기를 다시 산다. 놀이하는 아이가 된다. 신화화는 개인의 차원에서도 집단의 차원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알라이다 아스만에 의하면 기억의 장소들에서는 신의 역사가 그의 민족과 더불어 공간적으로 구체화 되었고, 확증과 징표들을 통해 그 장소는 집단의 기억에 각인된 것이다.

가령 과거에 유랑했던 유대 민족에게 예루살렘은 마음으로 찾는 곳이지 실제로 찾을 장소가 아니었다. 기억의 장소를 탈환하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한다. 문화적 기억의 힘은 ‘그 위에 무엇이라도 쓸 수 있는 백지상태를 마련하는’(알라이다 아스만) 것이다. 지리적, 심리적 고향은 현실적이기 보다는 잠재적이다. 출발이기보다는 도달해야 하는 미지의 시공이다. 제1회 재경 충북 작가 초대전은 인사동 국제화랑(1976.12.13.-12.19) 기획으로 열렸고, 이어 재경 충북 현역작가 초대전이 청주문화원 화랑(1977.7.28.-8.3)에서 열린 바 있다. 제2회 재경 충북 작가 창립전은 인사동 견지화랑(1978.5.4.-5.10)에서 열렸으며, 당시 회장은 정창섭이었다. 1976년 첫 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30여 회 열렸던 재경 충북작가협회 전은 [한국 현대미술 초대전] 이라는 이름으로도 개최했다. 병기된 전시 제목은 단순한 동호인 활동을 넘어서, 현대미술에 기여하자는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협회 전시에 10여년 정도의 공백기가 있었던 점은 집단의 응집력이나 양 지역을 연결 짓는 활동이 그만큼 어려웠음을 말한다. 30대 후반에 협회전에 처음 참여하기 시작한 회장 신범승은 ‘지명도 높은 대가들이 충북 출신이었다는 자긍심을 갖는다’고 하면서, ‘월전 장우성(1912-2005), 남정 박노수(1927-2013), 정창섭(1927-2011), 윤형근(1928-2007), 임직순(1921-1996), 하동철(1942-2006), 김봉구(1939-2014)’ 등을 든다. 이미 미술사적 평가에 오르는 중인 대가들이다. 올해 전시에도 윤형근을 포함한 작고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생존하는 충북 도내 원로 작가들의 작품들도 찬조 출품된다. 신범승은 충북 원로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 말한다. 전시 작품 중 가장 많은 소재를 차지하는 것은 자연의 풍경이다. 추억 속의 풍경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충북지역의 특성이 드러나는 사실주의풍의 작품들은 누군가 보면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서양화든 동양화든 공통적이다. 서로 다른 작가가 그린 작품인데 같은 장소로 짐작되는 지형이나 건물도 찾아볼 수 있다. 풍경에서 사실주의가 유지되는 것은 미술에서 익숙한 기법을 반복한다기 보다는, 대상 자체의 압도적인 중요성 때문은 아닐까. 고향은 분명히 그때도 지금도 거기에 있지만 똑같지 않다. 조금씩 또는 급격하게 변한다. 그것을 보는 사람 또한 변한다. 작가의 감성과 고유의 터치가 분명히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더 빼지도 더 보태지도 않은 그 자체의 풍경들이다. 하지만 굳이 난개발이나 폐허가 된 모습에 주목하지는 않는다. [고향의 봄]이란 노래처럼 상징적 우주의 중심인 고향은 봄이어야만 한다. 겨울이라 할지라도 포근한 느낌이다. 소복하게 눈이 쌓인 풍경은 따스해 보이기까지 한다. 고향은 변화에 도전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고향은 존재론적이다. 물론 ‘재경-’이니 수도권의 풍경이나 다른 지역의 풍경 또한 있다.

충북은 내륙지역이라서 적어도 바다는 다른 지역일 것이고, 충주나 도봉산처럼 특정 장소가 제목에 포함되기도 한다. 자연은 중심과 주변의 격차를 통해 발전하는 문명에 완충작용을 한다. 이국적인 풍경에서도 화면의 전경에는 자연이 크게 자리한다. 자연에 관한 한 고향이 더 경쟁력 있다. 그곳에 더해질 작가의 마음과 기억 때문이다. 그것은 작가 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해당되며, 소통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그곳은 마을이 자연에 푹 감싸여 있으며, 마을 입구를 지키는 든든한 나무가 서 있다. 동심에 가득한 기억의 풍경부터 한 장소 자체를 스펙터클한 시점으로 포괄한 작품도 있다. 사회학자 스코트 래쉬와 존 어리의 [기호와 공간의 경제]에 의하면, 고향은 전(前) 현대적 공간으로, 장소의 표지판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사회적 실천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었다. 또한 시간적 요소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즉 지나가는 공간이 아니라 사는 공간이었다.

이 전시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호수, 정자, 절, 다리, 당산나무, 숲과 계곡, 물, 흐드러진 꽃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나지막한 마을의 모습이 그것이다. 50여명이 참여한 이 전시의 압도적 형식은 회화지만, 소수로 포함된 도예나 서예작품의 경우 옛것을 담아내기에 어울리는 매체이다. 도예작품은 식물을 품고 있으며, 서예작품은 산세나 물처럼 흐른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장소표지판은 비워지고 추상적 공간이 대대적으로 발전한다. 저자들에 의하면 현대는 지도의 환경, 데카르트적 공간의 환경이다. 현대는 격자의 시대, 도시계획에서와 같은 수평 격자와 마천루의 수직 격자의 시대이다. 주체에게 의미 있는 상징들이 비워짐에 따라 현대적 공간은 객체적 공간이 된다. [기호와 공간의 경제]의 맥락에 의하면 예술가에게 고향은 지금 여기를 상대화할 수 있는 성찰적인 시공간이 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도 포함된 기하 추상 작품은 현대적 공간을 대표한다. 추상적 공간은 구체적 자리를 대신하여 현대를 대표한다. 자연 또한 추상화 된다.

자연의 재현이 아닌 자연의 과정을 표현하는 조형 언어는 추상적이다. 하지만 색감은 현대미술의 경향대로 조형 언어의 자율성을 추구하면서도 자연과의 연결을 유지한다. 율동감 있는 형태도 마찬가지다. 이곳과 저곳, 이때와 저때를 연결하는 자는 바로 작가 자신이다. 작업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갱신하는 오래된 방식이다. 반세기의 연혁만큼이나 그 구성원들의 작업 이력도 길다. 작품에는 그러한 자의식이 담겨있다. 거센 바람을 맞는 가녀린 나무, 꽃잎 몇 개 띄워진 정한수, 화구와 술병, 고향으로 돌아온 낡은 배, 화면 가득한 사람들 속에서 길을 잃은 자의 심정 등이 표현된 작품이 그러하다. 그들의 작품에는 오래된 별 표면에 가득한 운석 자국같은 흔적들이 있다. 그 흔적들은 상처이자 고난이기도 하지만 작품으로 승화된다. 우리의 빠른 물질적 발전 탓인가, 자연과 전통, 역사, 창조 등에 대한 존중이 그다지 크지 않은, 예술에 별로 우호적이지 않는 환경 속에서의 반세기, 작가들의 동행은 풀뿌리 예술문화의 예다. -